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아펜젤러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인성적인 면에서든 활동적인 면에서든 구한말의 인물들 중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이로, 현대에서도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. [[개신교]]계를 비롯해 역사학계와 교육학계에서도 그의 업적과 행보에 따른 역사적 의의 때문에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. 또한 직접적인 조선의 독립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많은 [[독립운동가]]들을 배출하거나 당시 조선에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이들을 교육 및 계몽하는데 힘써 독립운동사에도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. 학생 인권단체이자 독립운동 단체였던 [[https://m.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527855&cid=46623&categoryId=46623|협성회]]를 조직한 것도 아펜젤러가 최초이다.[* 따라서 협성회 활동은 배재학당이 중심이 되었다.] 또한 아펜젤러가 세운 [[정동제일교회]]는 독립운동가들의 산실 중 하나였다. 일단 종교 시설로 당시 경찰행정의 손에서 피할 수 있었고,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운영하고 있으니 일제로서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. [[유관순]] 열사의 장례가 치러진 곳도 바로 [[정동제일교회]]. [[배재고등학교]]는 창립자를 기리기 위한 아펜젤러의 동상과 초상화 등을 소장 중이다. 외부인 개방 시간에 배재고등학교 정문의 수위실에 문의를 하고 직접 볼 수 있으니 참고. 그 외엔 정동제일교회 근방에 [[https://appenzeller.pcu.ac.kr/|배재학당 역사박물관]]이 운영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.[* [[배재학당]] 역사박물관은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며, 주말 구분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한다.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에는 폐관.][*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본디 배재학당의 동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으나 배재중고교가 [[고덕동(서울)|고덕동]]으로 터를 옮기며 기념 건축물로 운영하였다가 2008년 부터 박물관으로 리모델링 하였다. 강북 도심 지역의 중고교 편중, 협소한 부지, 강남권 개발 등의 각자의 이유로 강북에 있던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했고 배재중고교도 강동구로 옮겼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